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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우소극장)프로젝트 '새싹' 연극 <페이퍼>_진실을 대하는 방법

 내용

#페이퍼

이 연극은 <페이퍼>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를 하게 한다.

국어사전을 찾지 않고 그냥 지금 페이퍼 하면 연상되는 생각들을 끄적여 보면

기록, 마음의 전달, 증거, 경제나 정치적으로 효력을 갖는 공증화된 문서 등이다.

이 중에서 연극 <페이퍼>가 차용하고 있는 의미는 아마 <마음의 전달>에 속하는 <진심 혹은 진실> 이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이에게 직접 고백하지 못하고 글로써 수줍게 고백하는 마음과

독재에 항거하는 의지를 투영하는 유인물로서의 페이퍼

이 두 가지의 페이퍼에 대한 개념이 연극의 큰 축을 이루는데

등장인물의 가치관의 충돌로 인해서 상황이 흥미롭고도 무서울 정도로 급변하는 것이 이 연극의 매력이었다.

이 연극이 시대적 배경을 군사독재 시절로 설정한 것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은 카페에서 자유를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금지곡이 되고

간첩의 불법 찌라시들이 난무하고, 독재를 규탄하는 청년들의 유인물들을 불법 유인물로 단속하던 시대였다.

연극 속 두 남자 주인공이 연관된 것은 연애편지다.

그런데 이 연애편지는 보통 연애편지가 아니다.

한 남자의 과거로 돌아 간다.

이제 막 경찰이 된 남자. 그 남자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여자친구가 다급하게 찾아와 그 남자에게 말한다.

월북했던 삼촌이 돌아와서 지금 집안이 쑥대밭이 됐노라고 그리고 행여 자신이 받은 연애편지로 인해서 그 남자마저 연루될까 봐 여자는 결연하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부터 서로 모르는 사이인 거야. 나는 가족이라서 어쩔 수 없지만 너는 살아야 되지 않겠어. 이거 네가 나한테 보낸 편지들이야 당장 태워버려 어서!.>

여자로부터 넘겨받은 큰 가방 안을 수북이 채우고 있던 자신이 직접 쓴 수많은 편지들... 망설이던 그 남자는 결국 편지를 태우며 여자와 연을 끊었을 것이다.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 사회가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세상의 부조리에 순응한 채 비리 형사가 되고 어느 날 우연히 취조실에서 만난 한 청년과 얽히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그 청년은 무거운 전공서적을 들고 가면서 갑자기 내린 비에 난처해 하고 있을 때 우산을 씌워주는 한 여자를 만난다.

남자는 여자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는데 실수로 여자는 자신의 책 한 권을 두고 간다.

<시집>이라고 떡 하니 씌여진 그 책 맨 앞장에는 < PARK ★> 이라고 쓰여 있었다.

박양..혹은 박별(?)그녀의 이름은 확실하지 않으나 그녀의 성이 박씨인 것을 알게 된다.

박양은 독재의 검열과 탄압과 폭력의 실상을 민중들에게 전하는 유인물을 비밀리에 제작 배포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경찰에게 쫓기고 있었다.

<박> 이라는 성의 의미는

독재의 실상을 알리는 유인물 페이퍼의 제작 배포->형사들은 이것을 페이퍼. 약어로 <P>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P는 한글 발음으로 <피> 혈액, 민중들이 검열과 탄압의 정권으로부터 맞서 싸워서 흘리는
<피>로 연상된다.

그리고 <박양>이 들고 있던 시집도
[은유와 상징으로 검열에 맞서서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저항의 언어로서의 시] 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느새 극은 박양을 찾는 에피소드로 넘어가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다루는 두 사람의 행동의 대비였다.

박양은 결국 두 남자 모두에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열쇠가 되는데

한 남자는 박양을 잡아서 진실의 은폐를 꾀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박양을 향한 자신의 진심을 지키고자 박양의 진실을 숨긴 채 자진해서 박양의 죄를 뒤집어쓴다.

여기에서 홍승안 배우님과 이이림 배우님의 연기력이 너무 좋으셔서 그 상황 자체의 감정의 흐름에 일말의 여지도 없이 모두 흡수했던 것 같다.

한 남자는 자신의 마음이 적힌 페이퍼가 해가 될까봐 태워버렸고, 한 남자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희생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진실을 외면한 남자는 더 이상 진심에 다가가질 못하고 죄를 단속해야 할 경찰임에도 상인들에게 뒷돈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무뎌진 채 살아가던 그가 자신의 진심을 지키고 전하려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 남자의 진심을 대신 전해주려 하지만 또다시 자신의 안위가 불안해 질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되자 주저하고 혼란을 겪는데, 마치 죄책감과 혼란이 마구 뒤섞인 남자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듯 사방으로 흩날리는 페이퍼들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초반부 두 남자의 개성 있고 조금은 모호한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로 극에 몰입시키더니 점점 두 남자의 진심을 대하는 극명한 자세를 보여주면서 깊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은 소극장을 오히려 마음껏 이용하는 듯한 유연하고 기발한 공간과 소품, 무대 활용은 관극의 또 다른 재미가 되었다.

이 극에서 조명과 음향이 참 좋았다고 느꼈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더 빛났다고 생각한다.

아주 빠른 시간과 정확한 타이밍에 조명과 음향, 배우의 연기의 밸런스가 탁월해서
아주 잠깐의 시간 만으로도 극의 분위기가 전환됨을 느꼈다.

연우 소극장은 처음 가봤는데 관객석과의 무대의 배치 또한 매우 좋았다.

새싹 프로젝트라는 애칭이 무색할 정도로 관극을 마치고 나오면 이미 큰 거목이 될 떡잎으로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

매우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

  • 20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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