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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동물원] 깨지기 쉬운 당신, 바깥 세상으로부터의 노크

테네시 윌리암스는 '상연을 위한 각서'에서 이렇게 말했다.<무대 기법은 단 하나의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다. 즉 진실에 보다 더 접근하는 것이다>어떤 새로운 기법을 쓰던 그것은 '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여 보다 더 예리하게, 보다 더 생생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 예휘의 [유리동물원]. 그들은 표현주의적인 기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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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암스는 '상연을 위한 각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대 기법은 단 하나의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다. 즉 진실에 보다 더 접근하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기법을 쓰던 그것은 '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여 보다 더 예리하게, 보다 더 생생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 예휘의 [유리동물원]. 그들은 표현주의적인 기법으로 진실에 다가간다.

마치 빙산 같은 조형물들이 버티고 선 무대. 무대 위엔 의자 몇 개와 '로라'의 유리 동물원 뿐 별다른 소품은 없었다. 무대 밝아지면 '아만다'와 그녀의 딸 '로라'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음식도 그릇도 없다. 이 연극엔 구체적 소품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배우들의 동작과 음향으로 식탁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마치 마임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었고, 그만큼 관객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열어두었다.

연극에서 '의상'은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유리동물원]은 각 캐릭터에 맞는 뚜렷한 의상으로 인물의 완성을 도왔다. '아만다'는 검은 드레스에 핑크빛 장갑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분장 역시 화려하다. 또한 그녀는 자주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 이러한 힌트로 그녀가 화려했던 과거에 매여 여전히 화려한 꿈을 꾸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반면 '톰'과 '로라'의 의상은 무척 검소하다. 톰은 자칫 초라하다 할 정도로 수수한 셔츠에 바지를 입었고 로라는 하얀 치마, 혹은 하얀 홈드레스를 입었다. 아만다의 화려한 의상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조적인 의상을 갖춰 입은 인물들을 보며 그들의 갈등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대의 공간을 활용하는 부분이었다. 무대는 크게 문(통로), 거실, 그리고 로라의 유리동물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인물들의 갈등은 그들의 '공간의 차이' 혹은 '시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무대에서 인물이 자리하는 장소로 그들의 시간과 공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극의 전반 부분('짐'이 초대되기 전까지) '톰'은 주로 문(통로) 쪽에 위치한다. 그는, 몸은 집안에 있으나 마음은 언제든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를 사는 어머니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개척되지 않은 미래로 가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인물이다. '문(통로)'이라는 공간은 그런 '톰'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준다.

'로라'는 주로 거실 의자나 자신이 만든 유리동물원, 또는 아버지(16년 동안 소식을 알 수 없는)의 축음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유리동물원 앞에서 유리 동물들을 보살피는 그녀는 현실을 초월한 인물이다. 유리동물원만큼이나 자기만의 환상적 세계에 사는 인물이다. 유리동물들을 관찰하는 그녀의 -자기 내부로 향해있는 듯한- 눈빛이나 축음기의 태엽을 돌릴 때의 웅크린 자세에서 그녀가 자폐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유리동물원이라는 공간은 그녀를 더욱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아만다', '톰', '로라'에게로 '현재(현실)'의 짐이 등장한다. 그의 등장은 '침투'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로라' 가족에게 치명적이다.

'짐'은 출세를 위해 화술을 배우는 현실적 인물이다. 짐의 현실과 아만다의 과거, 톰의 도피적 미래, 로라의 초월적 시간은 서로 충돌한다. 현실을 부정한 그들에게 현실 세계에서 온 '짐'은 버겁다. 그들은 '현재'에 의해 공격받고 상처받는다.

아만다는 '로라'와 '짐'을 맺어주려 한다. 그래서 이 낡은 현재를 떨쳐버리고 화려했던 과거를 재현해보고 싶어한다. '짐'은 '로라'에게 춤을 가르쳐 준다. (영화나 연극 속에 자주 등장하는 춤추는 장면은 주로 인물이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 등장하는 것 같다.) 짐과 춤을 추는 로라는 자폐적인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짐'이라는 새로운 현실 세계를 만나는 듯 보였다. 짐과 춤을 추다 부딪혀 뿔이 떨어져버린 유리동물, 유니콘을 보고 '보통 말로 변했으니 잘된 거죠, 뭐'라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특별하고 남달랐던 뿔을 버리고 일반적인 현실로 다가서나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에 '로라'는 너무 깨지기 쉬운 여자였다. 약간의 충격에도 금세 깨어지고 마는 로라에게 '짐'은 결혼할 여자가 있다는 말로 충격을 가한다. 이에 '로라', '아만다', '짐'은 연쇄적으로 깨어지고 만다.

극단 예휘의 [유리동물원]은 시청각적인 작품이었다. 정확한 대사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주기보단, 고개를 돌리는 몸짓에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표정에서, 신체를 극대화해 표현의 폭을 넓힌다. 이를테면 아만다와 로라의 대화 장면에서 아만다의 동작은 대부분 크고 거친 반면, 그것을 받아치는 로라의 동작은 여리고 주눅들어 있었다. 또한 크고 확대된 음향은 관객들의 상상을 돕는다. 로라가 타자기를 치는 장면이랄지, 음식을 먹는 장면 등은 청각을 유연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연극 [유리동물원]은 시각과 청각,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통해 무대를 감각적으로 바라보게 해 준 이 작품이었다. '로라'는 깨지기 쉬운 자기만의 유리동물원 안에 갇혀있다. 그녀의 유리동물원은 부서지고, 깨어져 그녀를 할퀴고 상처낼 것이다. 자기 세계를 부수고 다른 세계를 만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데엔 상처와 아픔이라는 제물이 필요하다. 유리동물원이란 그다지 안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연장으로 달려가, 깨지기 쉬운 당신이 거부해왔던 피할 수 없는 세계와 대면해보자.

OTR 남궁소담 기자 agami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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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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